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창해 역사 (문단 편집) == 그는 어디서 왔는가? == 역사상으로는 기록이 단 한 줄 나올 뿐인 수수께끼같은 인물이다. 게다가 '''창해'''라는 지명은 진나라에는 없는 군이다. 사기집해에서는 '창해군'을 '[[동이]]의 군장'으로 추측하였고, 당나라 시대의 인물 사마정이 집필한 '사기색은'은 한나라 때 동이의 예군(君) 남려가 투항하자, 그곳에 '창해군'을 설치한 것을 근거로 해서 유사한 지역일 것이라고 추측해서 [[예맥]]계 이민족으로 보고 있다. 한나라 [[무제(전한)|무제]] 시절 예인 28만명이 고조선을 버리고 한나라에 투항하자 [[무제]]는 그들을 위해 창해군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[[사기(역사책)|사기]]의 동이열전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. >元朔元年,武帝年也。濊君南閭等畔右渠,率二十八萬口詣遼東內屬,武帝以其地為蒼海郡,數年乃罷 >원년(기원전 128년)에 예군(濊君) 남려(南閭) 등이 우거(右渠)를 배반하고 28만구(萬口)를 이끌고 요동(遼東)에 귀속하였으므로, 무제(武帝)는 그 지역으로 창해군(蒼海郡)을 만들었으나, 수년 후에 곧 폐지하였다 - 《후한서》 동이열전 [[http://snakeoil.egloos.com/802801|번역출처]] 일단 무제가 설치한 [[창해군]]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한데 압록강에서 동해안까지 다양하다. 창해군(蒼海郡)은 설치된지(기원전 128년) 3년만에 폐지된 행정명이긴 하지만, 만약 장량의 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의 특정 지역이 창해라는 지명이나 집단명을 써왔고, 이것이 한무제 때 창해군(蒼海郡)이라는 행정명을 붙이는데 영향을 끼친 것이라면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. 즉, 초한쟁패기 혹은 그 이전부터 '창해'를 자칭하는 무리가 있었고, 후에 한무제에게 귀의한 이들이 이 이름을 계승해 사용하길 주청해 창해군이 설치된 가능성이 있다는 것.[* 실제로 한사군 중 [[진번군]]이나 [[임둔군]]이라는 지명들이 이렇게 작명되었다. "조선"이라는 이름도 [[낙랑군]]의 치소 조선현(지금의 [[평양]])으로 그 이름을 400년간 이어간다.] 일단 사마정이 창해군(倉海君)의 정체를 예맥족으로 추측한 근거는 그러하다. 반면, 장량이 만났다던 창해군이 진(秦)나라의 현인이었다는 설도 있고, 남쪽의 이민족 제오(諸奧)의 군장으로서 [[월나라]]가 [[초(춘추전국시대)|초나라]]에게 멸망하자 월왕 무강(無彊)의 아들이 독립하여 스스로를 창해군(倉海君)이라고 칭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그 사람을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